황보준원 선생님(쿼드 빈티지 오디오)
황보쌤이 가져온 것은 오래된 오디오였습니다. 캐리어에 담아오신 오디오의 위용이 딱 보기에는 심상치 않습니다. 꺼내본 오디오는 빈티지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물건이었는데요. 영화 소품으로나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물건을 눈앞에서 보니 신기했습니다. 황보쌤은 20여년만에 찾은 세운상가의 풍경에서 느껴지는 옛스러움이 무척 마음에 드시는 모양이었어요.
과연 오디오에 어떤 사연이 담겨 있는 걸까? 여쭈어보니 초등학교 때 아버지가 사오신 물건이라고 하시더군요. 40대이신 황보쌤의 초등학교 시절이라니 이 물건의 나이도 어림잡아 서른 살이라는 소리겠지요? 게다가 이 물건은 영국에서 만든 외제! 당시에는 분명 큰맘먹고 사셨을 텐데 막상 아버지는 음악에는 그다지 취미가 없으셨다는 말씀이셨어요. 이것이 바로 충동구매?
이 무겁고 오래된 물건을 고치려는 황보쌤의 마음을 물어보았습니다. 물론 세월이 지난 물건이 풍기는 멋에 대한 생각도 있지만, 황보쌤이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오디오의 가치는 바로 아버지와 함께 했던 물건이라는 점이었어요. 정신없는 세월 속에서 긴 시간을 함께 보냈음에도, 돌아보면 아버지와 함께 한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무언가가 없어 아쉬웠다는 황보쌤. 그러던 어느 날 창고를 뒤져보니 먼지를 뒤집어 쓴 오디오가 눈에 들어왔다고 하죠. 지금은 mp3로 편하게 음악을 어디서든 들을 수 있는 시대이지만, 이 오디오에 담긴 기억과 추억은 다른 무엇으로도 들을 수 없겠지요.
마침내 수리실에 도착한 오디오. 오늘 오디오를 고쳐주실 사장은 오디오만 30년 넘게 다뤄오신 이 사장님입니다. 살살 뜯어보더니 바로 병명을 진단해내시는군요. 여유롭게 담배 한 대 태우시며 ‘내일쯤 찾으러 와~’하는 사장님의 말투에서 자신감과 신뢰가 느껴집니다.
오디오를 잘 고쳐서 자신의 아이들에게도 물려주고 싶다는 황보쌤의 마음. 3대의 손때가 묻은 오디오라면, 그건 단순히 소리를 울리게 하는 도구가 아니라 할아버지와 아버지, 손자를 잇는 소중한 가족의 가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꼭 고치고 싶은 물건이었는데 어디에 맡겨야 할지, 비용은 올바로 책정될지 알 수 없어서 수리를 못하고 안타까운 마음만 가지고 계셨던 황보쌤. 이런 기회를 만나 사장님과 즐거운 이야기도 나누고 오디오도 고칠 수 있어서 무척 만족해 하셨고요. 의사로 일하고 계신 황보쌤은 수리된 오디오를 병원에 배치해 환자들과 함께 음악을 들을 생각이라고 하십니다. 그냥 컴퓨터로 음악을 틀어놓는 것보다 훨씬 보기 좋고 소리도 좋을 것 같다며 기대가 크셨습니다. 또 자신과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이 많을 거라며 수리워크숍의 지속과 확산을 응원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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