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도시에 살다가 이천으로 내려가신 이유를 잠시 이야기 해주세요.
A. 첫사랑에 실패해서 들어갔어요.
농사짓기 시작한게 93년이에요. 바람이 불던 때였는데, 겨울에 수유리 넘어서 우이동에서 골목을 걷고 있었는데 벽보에 환경운동연합 창립 모임을 한다고 오시라고 붙어 있는걸 보고는 잠시 생각을 했어요. 저런 일을 하고 살아야하나 아니면 시골에 가야하나... 5분쯤 생각하고 양주 농장으로 갔어요. 유기 농업하는 곳으로...풀무농장이라고 70년대부터 유기농업 운동을 하던 곳이었는데 그때부터 농사를 지었어요.
도시를 떠나서 시골에 내려갔는데, 하필 내려간 시골에 젊은 사람들이 모여 있더라구요. 사업가하던 친구, 철학과 나온 친구, 운동권 친구, 그런 친구들이 모여서 낮에는 농사 짓고 밤에는 생태니 공동체니 문화, 농업, 농촌이 어떻고 그런 이야기를 듣고 살았는데 저는 그 때 이후로는 그런 단어를 아예 안써요.
농사를 짓고 그랬는데 집에 들어가면 불이 꺼진 집이 너무 썰렁하잖아요. 유일하게 서울에 알고 있는 아가씨를 찾아서 결혼을 했어요. 좋아서 결혼한게 아니라 선택의 여지가 없었죠.(웃음) 아, 질문에서 중요한건 왜 시골로 갔냐는거죠? 취직할 생각도 없었고, 공무원이 될 생각도 없었고, 나의 나와바리를 만들려고 친구들을 만나고 했는데 그때는 이미 나이가 서른 가까이 되었고, 각자의 삶이 있었기 때문에 자주 만날 수가 없었어요.
태백, 감포, 월악산 서울 등 떠돌아 다니며 살았는데 젊은 마음에 조직에 속해 살고 싶지 않았죠. 그래서 선택한게 농사를 선택했죠.서른살부터 마흔살될때까지 사람과 만나서 조직을 만들고 그런거 아무것도 안했어요. 남은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땅도 집도...남은 건 애들만 네 명이었죠. 시골 처음 내려갈 때 6만원 들고 내려갔어요.
젊은 30대를 그 땅에 묻어버렸죠. 20대는 방황을 했고, 그리고 그때는 하고 싶은 것은 많은데, 할 수 있는 일은 많이 없잖아요. 20대는 붕 떠서 방황했고, 30대를 땅에 묻어버렸고.
채소를 심어서 사람들에게 보내주려고 심었는데 보내줄 사람이 없더라구요. 제 성격이 그런것도 아니고, 직거래는 2004년 나눔은 2008년에 시작을 했어요. 보람이 작은 농사를 지으며 보냈죠. 40대 들어서고 사고가 한 번 났어요. 비가 많이 와서 친구도 죽고, 땅도 떠내려가고. 그때 다시 도시로 돌아왔죠. 마음이 허전해서.
녹색 연합, 초록 연대, 녹색, 초록 등 그런게 있잖아요. 술 한 잔 마시러 올라가면 세 시간 네 시간을 기다려야해요. 그 생활을 몇 년 하다 보니 관계가 맺어지고 직거래를 하게 되었요. 2004년부터. 하나씩 전환이 되는거죠. 어떤 아줌마 한명이 전화질을 막 하더라구요. 처음에는 직거래를 7명이 하자고 되었는데 전화를 하니까 15명이 되었어요.
그리고 2008년 4월에 첫 나눔을 했어요. 그때부터 매주 배송을 했죠. 지금은 150가구 정도 하고 있어요. 생산이 적게 되면 적은대로 보내고, 많으면 많이 보내요. 장류, 효소, 채소, 장아찌, 김장 김치 등 품목은 다양해요. 그렇게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어요. 그래서 하다보니 하자센터랑 연결이 되어서 콩세알에서 키움이를 하고 있는데, 저희는 마을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보이는 마을이 아니라 관계로 이루어지는 마을이 생겼죠.
시골 공간을 활용해서 뭔가를 만들어 보는 것, ‘나눔’ 같은 걸 도와주면서 새로운 그룹들이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고. 젊은 그룹이 많이 발전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확장되면 성질이 변해버리니까, 이런 작은 그룹들이 많이 늘어 나갔으면 좋겠어요. 이 젊은 친구가 올지 안 올지 모르겠지만 저도 큰 조직에 종속되기 싫어서 안 들어갔는데, 제 나름대로 범위를 만들고 싶어서 시골로 들어갔는데, 시골에 가서도 자기 생활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고, 일단 시골엔 공간이 있잖아요. 그리고 사람이 살아요. 공간을 만나고 사람을 만날 수 있으니까. 일단 만남을 할 수 있다는 거죠. 처음에 갔을 때는 제가 못 만났죠. 노인들뿐이고. 이제는 젊은 친구들이 내려오면 만날 수 있다는 거죠.
‘율면은대학’이 젊은 사람들이 시골에 내려가는 것인데 귀촌, 귀농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만남이라고 생각해요. 만남 그 다음에 ‘얼마나 잘사느냐’는게 문제죠. 교육도 문화도 운동도 아니고 그냥 생활인거죠. 거창한 것도 아니고.
Q. 직거래 말고 나눔의 형태로 간다고 하는데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예를 든다면?
A. 콩새알 나눔 마을은 별게 없다. 생산하고 소통하고 보내주고. 회원분들이 놀다가고 수확해가는. 그런 단순한 것이다. 콩세알 엔에서 하고자 하는 것은 사업. 규모면에서 상당히 다양하다.
콩새알 엔(www.kong3al.net). 어떤 것을 이야기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우선. 나눔마을 같은 경우. 회원분들. 150명 정도 되는데 2농가 300가구정도 해서. 농부들. 키움. 회원분들. 나눔. 이렇게 형성되어 키움분들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게 이런 환경을 만드는게 좋을 것 같다. 안정적인 몰두에 도와드릴 계획이다. 작년에 율면에서 어린이 생태캠프를 진행했다. 율면을 왔다갔다 하다보니 공동화로 인한 아이들 교육이 고민거리로 남았다. 그래서 올해는 교육 사업을 작년보다 확장할 계획이다. 어린이 캠프에서 파종하고 수확하는 과정을 모두 볼 수 있게 장기적으로 교육하고, 청소년 대상 프로그램은 그곳에 살고 있는 청소년들이 자신의 지역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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