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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2011 마포univ/2011수업

2011년 9월 28일 / 문화로놀이짱 아랑과 함께 한 마포문화살롱


9월 28일, 문화로놀이짱 대표 아랑과 함께 "마포문화살롱"이란 이름으로 수업이 진행됩니다. 오늘은 문화로놀이짱의 사무실이 교실 겸 살롱이 됩니다. :) 






(기록 내용은 아랑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서술됩니다) 

1. 어떠한 상황이 몰릴 때 나에게 주는 메시지를 믿어요. 오늘이 그 날 인 것 같네요. :)

만나서 반갑습니다. 공간이 찾기 어려워서 걱정했어요. 다들 멀리서 오셔서 긴장되네요. 오늘 만나서 나눈 에너지가 여러분의 공간, 집으로 퍼져 활력이 되길 기대하며 즐겁게 수업을 해볼게요.

저의 닉네임은 아랑살롱이예요. 저는 늘 이렇게 반짝반짝한 사람들이 모여서 뭔가 나눌 수 있는 살롱을 꿈꿔왔어요. 그런데 오능 이렇게 사무실을 살롱으로 오픈하게 되어 기쁘네요. 제 성격이 그리 친절한 편은 아니라 여러분들을 만나기가 조심스럽기도 해서 늘 이런 제안이 들어오면 거절했었어요. 하지만 이젠 만날 때가 됐다고 생각했어요. 에너지가 고갈되어 그럴 수도 있고, 나눌 게 생겨서 그럴 수도 있어요. 어떠한 상황들이 한꺼번에 몰릴 때는 나에게 주는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해요. 

 
2. 울컥의 에너지

저를 설명하려면 제가 현재 몸담고 있는 놀이짱이 어떤 곳인지, 그리고 그 놀이짱이 어떤 과정으로 탄생되어 왔는지에 대해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아요. 7년 동안 어떻게 가구를 만드는 회사가 되었는지 말이예요. 저는 현재 기획자에서 경영자로서 새롭게 포지셔닝을 하며 체질을 개선중에 있습니다. 

제가 가진 일상의 힘은 '울컥'이예요. 울컥하는 상황에 맞닥뜨리면 에너지가 생겨요. 분노, 동경, 공감, 부조리 등 나의 기획에서는 그런 상황들이 주는 힘이 컸어요. 울컥하는 상황을 곱씹은 후 '이것을 어떻게 해결해볼까?' 에서 기획을 시작했어요. 대학 때 학생운동을 열심히 했던 편인데요. 그 때 당시에는 부조리의 울컥함에 에너지를 쏟아냈었어요.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내가 내렸던 결론은 더 많은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쉽게 풀어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저에게는 드라마 <모래시계>가 큰 영향을 줬어요. 광주사건을 모래시계에서 다뤘는데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이런 문제가 나에게까지 알려질 수 있었던 건 매체의 힘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고, 휴먼다큐멘터리 PD가 되어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2학년 때 방송국에 연수를 갔다가 내 생각했던 것과 다른 환경을 접했고, 모래시계 같은 드라마를 만들 수 없겠다고 생각해서 과감히 접었지요. 외부의 환경에 의해 빨리 마음이 정리가 됐었어요
그럼 이런 공감을 어디서 얻어낼까? 다시 고민이 시작됐어요. 그 때가 마침 뮤지컬들이 조금씩 만들어지면서 태동하던 시기였어요. 음악과 극이 연결되는 시도를 막 하던 시기였죠. 김민기씨의 <지하철 1호선>을 접하면서, '대안'이란 개념을 접했어요. 살다보면 어떤 개념과 텍스트가 나에게 확 다가오는 날이 있어요. 지금까지 그렇게 다가오는 텍스트와 나 사이의 운명을 크게 확대 해석하면서 살아왔어요. 그 때는 대안이란 개념이 크게 다가왔어요. 해결 할 수 있으리란 막연한 기대로 슬그머니 찾아갔다가 허벅지 밴드의 안이영노란 멘토를 만나면서, 아무 생각 없이 같이 일을 시작했던 것이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3. 내가 생각하는 요지를 잘 정리해서 제대로 의사소통을 해보자

저는 문화예술에 대해 공부하듯이 시작했어요. 학교 다닐 때 데모를 너무 많이 하다 보니 학교에서 나온 순간 그 때부터 내가 만난 세상, 사람은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어서 공부하고 싶었죠. 음악, 사조, 무언가.. 내가 모르는 게 있다면 빠짐없이 적어놨다가 밤에 찾아보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오는 질문들을 찾아서 답을 헤맸어요. 사람들의 행태가 문화라면,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나오는 이야기들 또한 하나의 문화라고 생각해서 열심히 엿보고 관찰했더니, 관찰이 하나의 방식을 만드는 기초가 됐어요. 나의 멘토였던 안이영노는 어린 친구들을 만나는 것을 꺼리지 않았고, 작지만 잘하는 것들을 잘 찾아줬었어요. 그런 것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죠. 그런 걸 봐주는 힘이 조금씩 뭔가를 바꿔나갈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어요. 안이영노와 만나서 '아랑'이라는 이름이 생겼고, 그렇게 의기투합해서 시작했던 게 '죽돌기획프로젝트'였습니다. 죽돌들을 위한 기획수업이 시작이었죠. "기획을 하려면 의사소통이 되야 한다." 의사소통할 수 있는 심플한 방법을 잘 찾고, 그들이 하고 싶다는 욕구를 독려해주고, 사고를 넗혀 주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것이 내가 겁없이 시작했던 첫 일이었어요. 죽돌프로젝트의 핵심은 '내가 생각하는 요지를 잘 정리해서 제대로 의사소통을 해보자'는 것이었어요. 그게 나와 그 친구들 모두에게 도움이 됐어요. 10대 친구들은 사고를 정리하고 진전시켜 하나의 결론의 도출시키면서 하고 싶은 것을 하게 되었고, 나는 저런 게 기획이구나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제 안에 혼란들이 그 때 만났던 10대 친구들을 통해서 정리가 되었어요. 공감을 갖는 활동을 하고 싶다가 기준이었다면, 기획으로 의사소통, 문제 해결 할 수 있는 것들을 만들어 내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기획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떄 당시 서울과 경기를 아침, 저녁으로 3군데씩 다니는 등 엄청나게 빠져있었어요. 예를 들어 축제를 기획하면, 왜 다들 창의력이 부족하다고 할까? 지금 가지고 있는 자원은 뭐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솔루션을 찾으려고 노력했어요. 이러한 생각들이 100명, 200명씩 되면서 영향력이 커지는 게 재미있었어요. 


4. 뭘 하나를 봐도 태생적으로 다르게 보는 시선. 이런 것들이 저의 일상을 바꿔주었어요.
그렇게 다니다 에너지가 고갈 됐고, 이십대 중반이 되었어요. 너무 지치는데 뭘 해야 될지 모르겠고 막연했어요. 그런데 그 때 하자에서 작업장이라는 이름을 쓰면서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시스템이 너무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면서 그러한 또 다른 작업장이 가능할까를 생각했어요. 나라면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두루두루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이 모여서 고민상담도 하고, 하고 있는 일 나누는 살롱. 크게는 모이고 싶은 사람들에게 공간을 주고, 모이게 하고 활력을 넣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홍대에서 즐겁게 놀았죠. 그 때까지만 해도 홍대는 조금은 더 다듬어 지지 않은 모습이 있었어요. 거기서 놀면서 사람들을 조금씩 알게 됐고, 일을 통해 만난 사람들이 디자인, 음악 등을 하는 사람들이었어요. 저는 그들의 장점을 관찰하기 시작했어요. 내가 봤던 그들의 장점은 가식이 없고, 벽 같은 선이 없어서 누구를 만나도 같은 태도로 대한다는 것이었어요. 뭘 하나를 봐도 그냥 태생적으로 다르게 보는 시선. 그 것들이 저의 일상을 너무 많이 바꿔주었어요. 일상이 나에게 의미하는 것은 뭐지? 생각하게 됐죠. 일상적으로 걷는 골목이 주는 매력. 아파트에 살면서는 몰랐던 것들을 홍대 골목을 다니면서 다시 느끼게 됐고, 도시가 주는 매력이 이런 것일 수 있겠구나, 모두가 공유하는 공간에 대한 필요한 요소, 이미지는 이런 것이겠구나~하면서, 저의 일상이 만나서 입체적으로 보이게 됐죠. 홍대가 마음에 들어서 이곳에서 뭐하고 놀지를 생각하다가 제가 알던 작업자와 10대들이 엮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서 안이영노의 기획에 참여했어요. 저에게10대는 길거리에서 크게 얘기하는 등 거친 모습이었어요. 저들의 에너지를 뭐로 하면 좋을까? 그것은 어쩜 불특정한 다수로부터 자기 자신을 방어하려는 것이 아닐까? 10대와 홍대에서 살고 있는 사람을 만나게 해주면 재미있는 일들이 생길 거라는 기대를 가지면서 일을 시작했죠. 이때부터 관계에 대해 집중하게 되었어요. 10대를 상대하는 어른이 보이는 태도는 늘 한결 같아보였죠. 하지만 홍대의 예술가들은 사람이 사람대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굉장히 자연스럽게 있었어요. 이런 것들이 문화 아닌가. 이런 각자의 삶의 양식이 문화 아닌가 싶었어요. 장르 중심의 문화가 아니라. 내가 기획한 수업의 10대들이 나를 이런 방식으로 대해줬다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 남기만 해도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일이든 3년정도 하다보면 뭔가 더 보이는 게 있어요. 저는 그 시간이면 충분히 자기 안의 결론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했을 때, 거기에 투자하면서 보낸 시간들이 땅을 파게 되는 것이죠. 숙달이 생기고, 나의 경험으로 인해 보는 시선이 생기고. 3년쯤 되면 다른 길들이 보이는데, 그 길이 또 전혀 무관하지 않아서 그 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시 집중할 수 있게 되요.
 

5.  혹시 살면서 이렇게 집중해 본 경험이 있는지...?

그러다 놀이짱의 히스토리가 되는 엄청난 경험을 하게 되요. 어느 날 홍대의 공중캠프에서 아침에 16미리 필름 워크숍을 했어요. 필름을 8컷씩 나눠 갖고 영화를 만드는 거였어요. 그 날 만났던 학생은 중학교 2학년이었고, 소개할 때 엄청나게 떠들어서 전달이 안 될 정도였어요. 그런데 작업이 시작되자, 모두들 말도 안하고 작업을 하는거예요. 처음에는 빨리하고 가고 싶어서 그런 줄 알았어요. 그러다 문득 한 친구한테 말을 걸었죠
"혹시 살면서 이렇게 집중해 본 경험 있어요?""어! 없어요!"그게 나에게 되게 컸어요. 이런 손작업이 사람에게 엄청난 집중력을 주는 것들 깨달았죠. 그 이후 몰입의 에너지에 빠졌어요. 평소 에너지를 60-70%를 쓰면서 사는데, 오늘 90%까지 채울 수 있는 방법을 알았다면 그 작업이 의미가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그 후 목공작업을 하면서 제가 몰입의 경험을 받았어요. 문화예술이라는 장르 안에서 자기의 존재를 확인하고 자존감을 높이고, 또 다른 감성이 드러나는 여지를 만들고... 이런 거 다 떠나서 의자를 만들고 나서 내가 달라졌어요. 내가 지금까지 열심히 일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60-70%밖에 쓰지 않았구나. 깨달았죠. 그 때 마침 나는 향유하는 것에도 싫증이 나고, 새로운 것을 기대하는 것도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생산해내는 구조가 문제 뿐만 아니라 교환 방식도 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재주가 있는 사람이 만들면 구매하는 방식을 넘어선 다른 것이 있었으면 좋겟다는 생각. 그렇게 OO시장이라는 것이 생겨났어요. OO시장 프로젝트를 통해 이 때 지금 없는 것에 대한, 제가 아직 결핍이라고 느끼지 못했던 것을 찾아내는 경험을 하게 되었어요. 대중적 공감의 장이 시장이라고 생각했고, 교환의 방식을 다르게 하고 싶었어요아이템이 아닌 지금 우리에게 부족한 것을 찾고, 이상하다고 느껴지는 질문을 통해, 이미 있는 것들의 시작으로 거슬러 올라가 빈 여백을 채우는 방식을 택한거죠. 대신 이런 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소개하려면 가게에 시나리오를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공유하고 싶은 가게에 "노네임노샵"이라는 가구 디자인하는 친구들이 캐리어에 공구들을 싣고, 주민 광장으로 갔죠.  

6. 돈 없이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OO시장 프로젝트는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하지만 손님은 거의 없었죠. 이 떄 또다시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될까..? 라는 고민이 생겼어요. 없으면 없는 대로 살던 시점에서 30이 되고, 부모님이 편찮으시면 어쩌지 라는 고민이 생긴거죠. 이 고민을 주변에서 풀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그래서 주변에 같이 있던 친구들이 재단이나 기관에 들어가기 시작했어요. 그 때까지 저는 경제적 문제들을 애써 외면하고 있었죠. 답이 안 나왔어요. 미련, 불안함이 있었는데, 내가 소비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느낌도 강하게 받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인간관계도 좁아지고, 부모님에게는 독립하겠다고 혼자 나와 살면서 월세 내는 것도 힘들고, 내 안의 욕망도 해결이 안 되니 자존감도 떨어지고 이런 일을 내가 왜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때 돈 없이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친구의 말이 설득력 있게 다가왔어요. 08~09년까지 빠르게 기술을 습득하기 시작했어요. 무언가 만드는 기술을 배우는 문화가 확 와서 시작 됐죠. 그런 때를 대비하기 위해 재료나 도구를 모으는 일을 열성으로 하게 됐어요. 내게 필요한 것들을 충당하기 위한 기술로 저는 목공으로 자연스럽게 전환하게 됐어요. 내 욕구, 결핍되어 있는 것을 충족할 기능들이 필요했기 떄문에 작업 공간, 재료, 창고에 대한 상상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것의 시뮬레이션을 했던 것이 00시장의 노점이예요. 향유하는 사람들이 이것을 경험하면 그 가치를 알아볼 수 있으리란 기대에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7. 사회적기업과의 만남
그렇게 해서 서교예술실험센터 옥상에 공방을 운영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얼마 후 사회적기업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죠. 처음에는 부정적으로 생각했어요. 하지만 생계의 문제, 고용의 불안, 안정적인 둥지에 대한 욕심이 생겨서 결심을 하고 사업 구상을 시작했죠. 재활용재료를 가지고 수입을 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보고자 했어요. 백지에서 무언가를 그리는 것보다 원래 있던 것을 잘 이용하는 게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일이라서 재활용 재료에 흥미를 가지게 됬고, 빠르게 변화하는 홍대에서 나오는 엄청난 폐자재들을 활용했어요. 이런 것들의 의미를 캠페인처럼 알리면서 시작했어요. 의기투합해서 사람들을 모아 회사를 만들었어요. 재활용목재는 독성이 빠진 건강한 목재였고, 버려진 목재가 아까워서 모았는데, 알고 보니 우리나라의 목재 재활용률은 3%밖에 되지 않았어요. 처음엔 재미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계속해서 의미를 찾아가면서 지속하고 있죠

 

Q&A

Q1. 지금은 돈을 잘 버는 친구들을 만날 때 어떤 기분이세요?

A1: 경영자의 눈으로 유심히 관찰해요. 일정하게 월급이 꼬박꼬박 들어오는 일을 하는 사람들도 나처럼 소비에 대한 박탈감 느낄까? 충격적인 사실은 이들이 절대 행복하지 않다고 말한다는 점이예요. 버는 만큼 일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적 박탈감 뿐만 아니라 상위 1%가 아니고는 계속 박탈감을 느끼는거죠. 

인생이 길어졌어요. 정년퇴임을 하고 나도 3-40년을 더 살려면 몇 십 억이 더 필요해요. 삶의 방식을 바꿔나가는 일을 빠르게 하지 않으면, 박탈감이 계속 될거예요. 공적 영역에서 개개인을 보호해줘야 한다는 것을 공유해야해요.

 

Q2공감 가는 이야기 많아서 좋았어요. 직장생활의 행복하지 않음이 절실하게 다가왔고요(웃음). 사회적 기업이라는 기업에 방점을 둔다면, 어려운 점 또는 의외로 해결되는 점은 무엇인가요? 속사정이 궁금해요.

A2: 고민이 많이 되는 부분이예요. 나 하나의 삶이 아니라 식구가 생겼잖아요. 굉장히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전망이 밝다 해도 하루 아침에 상황이 변할 수 있도 있으니까요. 답은 없지만 해 볼만큼 다 해보지는 않았으니, 더욱 열심히 해보는 수밖에요.  앞에서도 말했듯이 나는 경영인으로서 체질개선을 하면서 준비를 하고 있어요. 그런 상황에서 놀이짱을 봤을 때, 노동집약적 3배 이상의 공이 더 들더라고요. 그래서 매출을 좀 더 높일 수 있는 방법 찾아보고 있어요. 대량으로 제작할 수 있는. 일정한 판재를 만들어서 그것들을 모았을 때 가구를 만들 수 잇도록 말이예요. 그리고 잘 모르는 건강함을 좀 더 어필할 생각이예요. 분명 시장은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사업 모델이 없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해서 뚝심있게 할 생각이예요. 고용창출보다는 필요한 일거리를 만드는데 관심 있어요. 그 일거리를 내가 찾아서 성공, 실패를 떠나 위로가 되길. 나중에 나는 캠페인 회사를 만들고 싶기도 해요. 동네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어 해결해보고자 하는 운동을 벌이는 회사말이예요. 결론적으로 만족하는 편이죠. 일 해서 돈 벌고, 그 돈으로 공방 만들어서 주민들을 위한 DIY공간을 만들자는 얘기가 통하는 회사이기 때문에요. 물건 이야기를 중심으로 풀어가려고 생각이예요.

 

Q3. 자기만의 시간관리 방법이 있나요?

A3: 그게 고민이예요. 시간이 부족해요. 이게 램의 문제인가? 전 결론부터 말하면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스트레스 받으면 잠을 자야 되요. 요새는 긴장하면서 입시생 모드로 전환 되서 덜 자고, 아침시간을 잘 활용하려 해요. 거의 닥치는 일을 하는데 바빠요
우연히 홍대 앞 뮤지션 대부분 물류 아르바이트한다는 것 알게 됐어요. 그래서 몇 몇 친한 뮤지션들에게 조심스럽게 제안을 했어요. 오전에 우리 회사에서 일을 하지 않겠냐고. 그들이 고맙게도 수락해 주었어요. 그 에너지가 크게 두가지로 보이더라고요. 밴드 하는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팀워크가 강해요. 팀의 분위기를 바꿔주고 있죠. 두 번째는 한 명씩 매칭해서 악기를 배우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저는 지금의 청년들에게 괜찮다, 큰 일 안난다, 다 살 수 있따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주변에서 많이 해줘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결국엔 재미있는 사람이 이기는 거예요. 각자가 좀 더 풍요롭도록 만족스럽게 살 수 있는 것, 잃은 것, 얻는 것, 주변의 자원 등을 계산해 보면 결국 너무 어려운 선택은 아닐거예요. 관계망의 하나의 자원으로써 여기에 있을테니, 일의 한 부분으로서 저를 활용하신다면 좋겠어요. 감사합니